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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역사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미국 대공황 사건에 대하여 _ 2

by 유꿍이 2023. 8. 18.

앞서 다뤘던 이야기의 후속편.

 

주가 대폭락 이후 엄청난 실업자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무료급식소까지 생기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통을 뒤져가면서 생계를 버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재산을 모두 잃은 사람들은 대도시 주변에 판자촌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곳을 당시 대통령의 무능함을 비난하는 의도를 담아

후버빌(hooverville) 이라고 불렸으며 이곳의 거주자는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노동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 4명 중 1명이 실직자였다.

 

그러나 1933년 3월 이 상황을 반전시킬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이름은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만이

이 참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실제 정책으로도 옮긴 것이 바로 '뉴딜 정책'이다.

그리고 취임 후 100일 동안 많은 개혁안 들을 통과시켰다.

이후에도 은행과 금융권의 문제점들을 고쳤고

농업 부흥의 발전에 힘썼으며 노조의 활동 또한 적극 지원하였다.

많은 국가 주도의 공공사업을 육성시켜 사회주의적 정책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러한 뉴딜정책으로 인하여 미국 경제는 1933년~ 1937년까지

약 4년간 가시적인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GDP 5.2% 의 성장률을 이뤄냈으며,

다양한 공공사업들은 국민들의 소득과 지출을 향상시키게 되었다.

 

길고 길었던 미국의 대공황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안정화를 찾기 시작했지만

 

1937년을 기점으로 또 다시 미국에 경제 불황이 찾아왔다.

줄었던 실업률은 급격히 치솟아 20%를 기록하였고

10년간 지속되던 농업계 장기적인 불황이 농민들을 힘들게 하였다.

또한 대규모 공공사업이 발생시킨 재정적자는

이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과감한 정책 시행을 주저하게 만들면서

미국은 또 다시 경기 불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렇게 미국이 힘들게 버티던 와중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것이다.

10년동안이나 지속되던 경기 불황은

유럽 대륙에 파시즘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베르사유 체제와 대공황으로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났던 독일에서는

나치당이 집권하게 되는 결과를 자아냈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미국은 참전과 중립 사이에서 고민했다.

고립주의를 선택, 중립을 지키기로 하였으나

연합국에게 무기를 다시 팔기 시작했고

한동안 경기 불황으로 힘들었던 미국 경제는

1938년을 기점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이때 터져버린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경제 대공황에서 빠르게 탈출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급증한 식량 수요로 인해

농업계의 장기적인 불황에서 역대 최대의 호황을 안겨다 주었고

전쟁 물자의 수요는 제조업 분야의 폭풍 성장을 불러 일으켰으며,

모든 산업들이 전시 수요 증가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인하여

미국은 고립주의를 지키던 중립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추축국과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여러 산업들이 번창하며 실업률이 하락하던 와중에

1,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전쟁에 동원되어

유럽과 태평양으로 파견되었고,

그 결과 종전 직전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완전 고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이뤄냈고

드디어 길고 길었던 대공황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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